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문단 편집)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abhisheksanyal.files.wordpress.com/gabriel-batistuta_argentina_gol_happy.jpg|width=100%]]}}}||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던 바티스투타가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부터였다. 최전방 공격수로 출장한 바티스투타는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고,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파라과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전 등 중요한 고비마다 골을 터뜨리며 6경기 6득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아르헨티나에게는 1959년 우승 이후 32년만의 우승. 득점왕은 당연히 바티스투타의 몫이었다. 2년 뒤인 [[1993년]] [[코파 아메리카]]. 이번에도 주전으로 출장한 바티스투타는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볼리비아]]전 결승골과 결승전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멕시코]]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조국에 또다시 우승컵을 안겼다[* 그리고 이 우승이 아르헨티나의 20세기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이 되었다.]. 특히 결승전의 두 골은 각각 바티스투타의 뛰어난 운동능력과 간결한 볼트래핑을 잘 살린 골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54iSHAEziQ)]}}}||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BDDED 2%, #FFFFFF 2%, #FFFFFF 4%, #ABDDED 4%, #ABDDED 6%, #123163 6%, #123163 94%, #ABDDED 94%, #ABDDED 96%, #FFFFFF 96%, #FFFFFF 98%, #ABDDED 98%)" {{{#ffffff '''그리스와의 경기 中'''}}}}}} || 대망의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년 미국 월드컵]]. 첫 경기인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전에서 바티스투타는 무려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다.[* 이전 글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가 발만 대면 골인 어시스트를 해줘서 바티스투타가 [[해트트릭]]을 했다."라는 식으로 적었는데, 경기를 안 보고 상상으로 적은 글이다. 이 날 바티스투타가 마라도나에게 받은 어시스트는 단 하나. 그것도 하프라인 부근에서 받은 패스를 몰고 들어와서 넣은 데뷔골이다.] 득점뿐만 아니라 투톱 파트너였던 [[클라우디오 카니자]]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는 승승장구, 하지만 [[디에고 마라도나]]가 [[도핑]] 테스트에 걸려 퇴출되며 예상밖의 전력 손실과 팀 분위기 저하 등의 악재를 만나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16강전 상대는 [[게오르게 하지]]가 이끄는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루마니아]]. 바티스투타는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절묘한 개인기로 [[페널티 킥]]을 얻어내고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5yZD4NA5HyU)]}}}||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15%, #ABDDED 15%, #ABDDED 29%, #FFFFFF 29%, #FFFFFF 43%, #ABDDED 43%, #ABDDED 57%, #FFFFFF 57%, #FFFFFF 71%, #ABDDED 71%, #ABDDED 85%, #FFFFFF 85%)" {{{#000000,#e5e5e5 '''루마니아와의 경기 中'''}}}}}} || 그러나 경기는 난타전 끝에 루마니아의 3-2 승리로 종료. 그렇게 바티스투타의 첫번째 월드컵도 마무리됐다.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맹활약했다.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볼리비아]],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을 상대로 골을 넣으며 4득점을 기록, 개인적으로는 또다시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팀은 8강전에서 브라질과 2대2로 비긴 후 [[승부차기]] 끝에 패배, [[코파 아메리카]] 3연패의 꿈이 좌절됐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4dn4t_p1O0Q)]}}}||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15%, #ABDDED 15%, #ABDDED 29%, #FFFFFF 29%, #FFFFFF 43%, #ABDDED 43%, #ABDDED 57%, #FFFFFF 57%, #FFFFFF 71%, #ABDDED 71%, #ABDDED 85%, #FFFFFF 85%)" {{{#000000,#e5e5e5 '''자메이카와의 경기 中'''}}}}}}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자메이카]]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했지만, 16강을 거치고 나서 8강이 문제였다. [[거스 히딩크|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를 만나게 된 것. 결국 [[네덜란드]]에게 패해 8강에서 탈락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AEH6DSgAI)]}}}||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15%, #ABDDED 15%, #ABDDED 29%, #FFFFFF 29%, #FFFFFF 43%, #ABDDED 43%, #ABDDED 57%, #FFFFFF 57%, #FFFFFF 71%, #ABDDED 71%, #ABDDED 85%, #FFFFFF 85%)" {{{#000000,#e5e5e5 '''네덜란드와의 경기 中'''}}}}}} || 이 때 통한의 슛이 하나 있었는데, 바티스투타 스타일로 원터치 슈팅을 날린 것이 그만 골 포스트에 맞고 만 것.[* 세게 맞긴 했어도 맞고 나서는 비실비실하게 코너킥 부근으로 굴러갔다. 슈팅을 골키퍼가 맞았으면 기절했을 거라는 서술도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절대 그정도는 아니었다.] 최종 개인 득점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동률인 5골이다. 재미있는 기록이긴 하지만 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여유롭게 이겼는데 네덜란드는 3·4위전에서 그 크로아티아에게 덜미를 잡혀버린 것이다. 마치 [[가위바위보]]같은 전적이 나왔다. 어지간한 공격수는 리그에서 좀처럼 기록하기 힘든 [[해트트릭]]을 월드컵 무대에서, 그것도 2개 대회 연속 기록하는 괴수였지만 그가 참여한 대표팀은 그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 [[해트트릭]] 기록을 당시 월드컵에서 처녀출전한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랑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자메이카]]와 같은 약체를 상대로 양학했다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는 아무리 명망있는 월드클래스 선수들도 양학도 제대로 못하는 선수들도 허다하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선수인건 맞다.] 그리고 2002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월드컵이 처음 열리는 땅]]에서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맞아 마지막 투혼을 다짐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가 [[모라토리움|돈 없다고 배를 쨌다.]]''' 이는 우승 포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에서 [[비행기]]표 값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경제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바티스투타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자비'''로 월드컵에 참가하며 [[일본]]에 입국했다.[* 사실 이것도 확인이 필요하다. 월드컵은 FIFA가 본선 출전국에 지급하는 배당금에 참가 준비금과 체제비 명목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다 항공권은 협회 스태프 몫까지 FIFA가 직접 지불하게 되어 있으며, 또한 이건 실제로는 대회별 파트너 항공사가 부담한다. 당장 2002년 대회의 경우 전해 12월에 팀당 100만 스위스 프랑(당시 환율로 약 7억 3천만 원) 규모로 준비금이 집행되었다.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5&aid=0000082236|기사]]. 대표팀 멤버의 대부분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대회 전 소집훈련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아예 선수들이 유럽에서 자비로 직접 일본으로 간 것이라면 몰라도 최소한 아르헨티나에 소집된 선수를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데 지장이 생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가 속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F조|F조]] 편성이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 ''' 바로 '''[[죽음의 조/축구|죽음의 조]]'''였다. 게다가 영원한 맞수인 [[잉글랜드]]까지 포함된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 운이 없게도 경기를 치르는 일본 열도는 [[데이비드 베컴]] 광풍이 일며 베컴과 그의 동료들인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들은 거의 국빈 취급을 받았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는 찬밥 취급을 받는 등 전반적으로 여건이 불리했다. [[일본]]이 잉글랜드를 일방적으로 응원했으니 절반 정도는 잉글랜드의 홈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상황.[* 사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도 열렬한 응원을 받았으나, 잉글랜드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참고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인들은 응원단을 둘로 짤라서 양쪽 모두를 응원했으나 [[일본인]]들은 일방적으로 인기있는 팀들을 응원했다. 당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의 경기들을 보면 이게 일본인지 응원받는 나라의 홈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에콰도르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국가연주 때 일본인들의 야유를 받았고 덴마크도 경기 내내 야유를 받았다. 스웨덴과 세네갈의 16강전 때는 유명한 선수가 더 많은 스웨덴을 일방적으로 응원했고, 심지어 일본인들은 잉글랜드의 국가를 따라불렀다! 마치 2018년의 중국과 같았다. 중국 축구팬들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자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에 나갈 실력이 도저히 안 되니까 독일이나 브라질 같은 강하고 인기 많은 팀을 응원하는 문화가 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F조|F조]] 한국과 독일 경기에도 [[독일인]]의 탈을 쓴 [[중국인]]들이 정말 많이 왔다. 그리고 토토에 돈까지 꼴아박고 [[자살]]한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일본처럼 대놓고 독일 국가를 따라부르거나 한국에게 야유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지금이야 아시아의 4강 취급받는 일본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월드컵은 겨우 한 번 나가본 일본이었다.] 정작 잉글랜드는 이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실력이 별 볼일 없었는데, 아르헨티나와 스웨덴 모두가 이긴 나이지리아와 유일하게 비겼고, 스웨덴과도 비겨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하나만 이렇게 이기고 16강에 올라왔다. 그래도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스쿼드와 남미 예선 과정이 워낙에 좋았기에[* 라이벌 [[브라질]]을 압도하고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반면에 브라질은 감독까지 교체하는 어려움 끝에 악전고투하며 3위로 겨우 본선행 티켓을 얻었다.] 수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는 거의 100% 32강 본선 조별리그를 통과하리라 예상했고 심지어 프랑스를 제치고 우승 후보 0순위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벌어진 결과는 [[아르헨티나]]에 닥친 경제 상황처럼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nIE5jHg2lms)]}}}||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BDDED 2%, #FFFFFF 2%, #FFFFFF 4%, #ABDDED 4%, #ABDDED 6%, #123163 6%, #123163 94%, #ABDDED 94%, #ABDDED 96%, #FFFFFF 96%, #FFFFFF 98%, #ABDDED 98%)" {{{#ffffff '''나이지리아와의 경기 中'''}}}}}} || F조 첫번째 경기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는 나이지리아와 0:0 팽팽한 싸움을 벌이다 결국 바티스투타의 극적인 결승골로 어렵게 1승을 얻는다. 반면 잉글랜드와 스웨덴이 1:1로 비기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듯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전에서 시뮬레이션에 의한 통한의 [[페널티 킥]][* 확실히 [[마이클 오언]]의 시뮬레이션이다. 이를 2006년에 [[데이비드 베컴]]이 인정했다. 베컴이 이것을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인정하면서 같이 한 말이 '''"내가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의 [[디에고 마라도나]]와 같은 입장이었어도 [[신의 손|손으로 공을 넣었다]]."'''라고 대놓고 말했다.]을 내주며 [[삿포로 참사#s-4|통한의 패전]]을 겪었다. 이는 오언이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수비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홋스퍼 FC]], [[파리 생제르맹 FC]] 감독을 역임했던 포체티노 맞다.]에게 꾀병을 부린 결과였다.[* 이 월드컵 이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는 두 번 다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시뮬레이션임을 인정한 [[데이비드 베컴]]은 1998년 월드컵 당시 [[디에고 시메오네]]의 다리를 걷어 찬 것으로 국가대표에 다시는 못 승선할것 같았지만 4년 후 이 악연에 대해 증언하게 된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는 마지막 경기인 스웨덴전까지 끌려가던 중, 경기 막판 [[에르난 크레스포|크레스포]]의 동점 골로 마지막 희망을 이어갔지만 끝내 1:1로 비기며 1승 1무 1패에 그쳐 충격적인 조별리그 광탈의 수모를 당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라는 말처럼 경제난에 고통받는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월드컵 개최 기간 단 한달 동안이라도 희망을 선사하고자 했던 선수들은 결국 그라운드에 쓰러져 통곡했다. 후반전 발목 부상으로 교체된 바티스투타 역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당시 많은 축구팬을 가슴 뭉클하게 했다. 결국 바티스투타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경력을 쓸쓸히 마무리하였다. ||<-2><#003768> [[파일:FIFA 월드컵 워드마크 화이트.svg|width=200]][br]'''{{{#fff FIFA 월드컵 역대 득점 순위}}}''' || ||<#fff> '''골 수''' ||<#fff> '''선수명 (국적)''' || || 16 ||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 || 15 || [[호나우두]] (브라질) || || 14 || [[게르트 뮐러]] (독일) || || 13 || [[리오넬 메시]] (아르헨티나) [br] [[쥐스트 퐁텐]] (프랑스) || || 12 || [[킬리안 음바페]] (프랑스) [br] [[펠레]] (브라질) || || 11 || [[위르겐 클린스만]] (독일) [br] [[산도르 코츠시스]] (헝가리) || || '''10''' || [[토마스 뮐러]] (독일) [br]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br]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br] [[헬무트 란]] (독일) [br]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br] [[그제고시 라토]] (폴란드) || 시대를 풍미했던 실력에 비해 정작 바티스투타 개인이 얻은 수상 기록은 부족했을지언정, 모두가 인정했던 절정의 기량과 그보다 감동을 주던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사랑받는다. 가장 큰 성취를 이룬 때는 아마도 [[AS 로마]]에서 우승한 때겠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전성기 시절은 피오렌티나에 몸을 담았을 때였고, 지금도 피오렌티나의 레전드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축구사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부를 만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